묏자리가 안 좋으면 자손이 안좋다는데...
풍수지리 대가라는 사람에게 묏자리를 쓰고도
시간이 지나서 그 묏자리에 대하여 또다른 풍수가에게 물어보라.
분명코 그 대답은 안 좋다는 말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묏자리의 좋고 나쁨보다는 이미 묏자리를 대하는 풍수가의
속내가 오로지 상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신은 여러해 지나면 자연의 섭리대로 당연히 썩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썩지 않는 폐비닐 등이 환경오염에 문제가 되듯이
시신도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면
생태계의 입장으로 본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최면에 걸린 풍수가들의 장삿속 말인 줄도 모르고
후손들의 안되는 일이 습기 있는 땅으로 인해 썩은 시신 때문이라고 부추겨 대니
그 안된다는 말에 마음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고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자.
잘 되고 못되는 건 왜 꼭 후손만이 해당할까.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항상 살아있는 후손이니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후손이라야 돈을 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시신을 불에 태워 아에 없애버린
화장한 자손들은 다 날벼락 맞고 살았단 말인가.
우리는 오랜동안 조상을 모셔왔다.
그렇다고 조상을 모시는 행위 그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제사를 지내는 풍습 그 자체는 좋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변질되어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하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늘 조상을 잘 섬기지 않으면 그 후손에게 해가 온다는 말들을 듣고 산다.
그러나 그건 세상을 떠나려는 자들의 잘못된 수혜의식이 빚어 낸
편협적인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긴 그 협박에 못이겨 너도나도 제사를 지내는 지도 모른다.
자기가 잘못되면 안되니까.
그러나 이런 비유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구한말, 정말 못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미국 하와이 남미 등으로
돈벌러 집을 떠나면서 반 노예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들의 가장 큰 회한과 부담은 역시 성묘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묘지 앞에서 제사는 커녕 벌초 한 번 못하고 지냈어도
그들의 후손들은 각 나라에서 2세 3세라는 이름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한술 더 떠서 그나라의 최고급 인사가 된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그렇게 조상 묘소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후손들이
잘들 살아가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말이다.
조선시대 임금인 세종 초기 때 벼슬했던 어변갑이라는 사람의 아들
'어효첨'이라는 인물은 조정의 풍수설로 논란이 많았을 때,
명당설을 배척한 인물로 유명하다.
왕이 그 집안의 묘를 알아보게 하니 어효첨의 집안은 명당을 찾지 않고
집주변에 되는대로 묘소를 썼다는 지라,
이에 왕도 명당을 찾아 자주 옮기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후 풍수가 들이 말하는, 명당을 찾지 않고 장사 지내는 것을
"어씨 세장법(魚氏 世葬法)"이라 불렀다 한다.
그 '어효첨'은 죽기에 앞서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묘를 쓸 때, 명당 따위는 구하지도 말고
적당한 길 옆이라도 좋다고 말하니, 그 자손들도 따랐다 한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 형제는 같은 해에 과거급제를 하여
그 중 '어세겸'은 좌정승을 지냈고, 동생인 '어세공'은 판서를 지냈다.
3 대가 미신을 타파하고 풍수설을 멀리한 집안으로
조선시대를 빛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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