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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대 받으며 크는 아이는

정보 칼럼 2

by 와정보 2020. 9. 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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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세대 부모들이 자식에게 지나치게 존대해가며 키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선 아이를 천대시하지 않고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이는 득보다는 더 많은 폐해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문제로 보인다.

과거 신분제도 하에서의 존귀한 자제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탑의 서열이 정해졌으므로
건방을 떨든 고고하든 후일에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현대 사회는 모두가 대등하다는 규범 속에서 배우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사회에서 극존대로만 살아온 자식이 사회에 나가며 받게 될 하대나 대등식 상대에 대해, 나는 그런 대접 받으며 살지 않았는데, 또는 우리 부모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부터 내세운다면 결국 사회적 거부자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사춘기란 부모의 곁에서 떠나가게 만들기 위한 자연법칙인 것부터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춘기 때 부모 말을 안 듣거나 덤벼드는 행위들이 보이는 것은 부모에게서 정 떼기를 하여 독립의 길을 갈 수 있게 만드는, 집단생활을 하는 모든 동물이 갖는 부모와의 이별 때를 알리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래서 사자들이 사춘기가 되는 수컷은 스스로 집단을 떠나고, 혹 사춘기가 늦어 응석을 부리며 떠나지 않는 수컷에게는 오히려 어미가 물어 쫓아내고야 마는 것인데, 이는 근친 간의 교배를 금지하려는 자연계의 원칙이기도 하는 등 모든 생태계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유독 인간만이 사춘기를 넘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자식들을 끼고도는 심리는 그 자식을 욕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시킨 후에도 자기 영역권에 두고 품 안의 자식처럼 정을 떼지 못하니 그런 인간들의 정붙이기는 결국 장점을 떠나 폐해 역시 많을 것이란 점도 인식해야만 한다.

'결혼을 시킨다.'는 '시킨다'는 의식부터가 문제일 수 있다. 자기 짝은 자기가 찾아가야 하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연법칙을 거스르며 나서야 하는 것에서부터 이미 어른은 없고 애들만 있는 사회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 자식만을 위하려는 유난스러움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음도 알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에 자기 자식에게 하는 언어적 극존칭 역시 자식을 위하는 척하는 특별 나르시시즘이기에 결국 그렇게 큰 아이들은 귀한 사람이기보다는 사회의 거부와 충돌을 불러올 수 있으니 좀 더 멀리 보는 지혜를 갖고 사회 모두가 환영하는 사람으로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물론 부모의 고집스런 논리에서 벗어나 남과 소통하게 하는 평범한 노력이 필요한데 사실 그 노력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식만이 특별하다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알 수 있게 되는 철학적 사고 즉, 논어적이기도 한 往者不諫 來者可追(왕자불간 내자가추)라는 떠난 홀씨를 붙잡지 않는 민들레를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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