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덥지 않은 초여름의 어느 일요일 아침
오씨 아저씨의 딸아이는 놀러 나가고
그의 아내는 주방에 있어
오씨는 그저
안방에 누워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아파트 현관에서 낯선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줌마! 우리 엄마가 소금 좀 얻어
오라고 하시는데 조금만 주실래요?"
오씨는 고개를 돌려 열린 방문 밖을 보니까.
거기엔 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 하나로 묶고,
어깨가 다 들어난 빨간 민소매 옷을 귀엽게 입은
예닐곱 살 난 그의 딸 도래의 여자 아이가
수줍은 모습도 없이 당찬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아이가 오줌을 싸면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시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아이가 소금을 얻으러 오면
그 아이가 오줌을 싼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약간의 망신을 주어 다음부터는
오줌싸는 일이 없게 만들려는
어른들의 지혜였습니다.)
주방에 있던 오씨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소금을 얻으려면
가게로 가야지 우리집은 가게가 아니잖니!"
그 아이는 처음의 당찬 모습보다는 이내 풀죽은 모습이 되어 다시 말했습니다.
"쪼금만
주셔도 되요..오."
오씨 아내는 '요 앙큼한 것 좀 봐라.'하는 표정으로
그의 남편을 돌아다 보며
'요녀석을 어찌 대처해
줄까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습니다.
(오줌 싼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안 그런 척하며
엄마 심부름을 온 것처럼 위장하는 그
아이의 태도에
아줌마가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냥은 안되고 돈을 줘야지!"
그 아이는 더욱 기세가 꺽여 이내 그
예쁜 얼굴에서 눈물이 맺힐 듯 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오씨 집을 들어서기 전에 생각하기를,
용기있게 요구하면 쉽게 얻어갈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던 것인데,
상황이 힘들어 질 것 같아지자 막연해 하는 표정이 된 것이지요.)
"저..."
그 아이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진 듯이 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으며 울상이 되어 말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오씨는 그 순간 그 아이의 편이 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에서 나와 그에게 갔습니다.
"너 어디 사니?"
다른 어른의 출현에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요 옆집에
이사 왔어요..."
풀죽어 말하는 얼굴에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오씨는 자기 아내의 매정함에 대해 사과라도 해주는 듯이
그
아이와 같이 쪼그려 앉아
그 애의 하얗게 드러난 어깨를 살며시 잡아 껴안아 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아저씨가 줄 테니까."
그 아이는 걱정스럽던 얼굴을 쫙 펴면서 오씨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오씨는 미소지으며 아주 작은 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너 오줌 쌌구나?"
그 아이는 차마 듣지 못할 소리라도 들은 양
펴졌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며 비밀을
들킨 수치심으로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저씨가 어떻게 ..."
너무나도 놀라는 그 아이의
모습에 오히려 오씨가 당황해 하며
진정시킬 말을 생각하다가 얼떨결에 말했습니다.
"으으..저 그 그건 요정 맞어 요정이 와서 내게
말해 주었단다."
"요정? ...아 요정!......그래...요...?"
그 아이는 다시 얼굴이 펴지면서
솜사탕을 만드는
것을 보는 듯이 신기하고 재미롭다는 표정이 되어
오씨 얼굴을 바라보고 웃는데 보니까 그 아이의 앞니 두 개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서
놀러 나갔던 오씨의 딸인 '정이'가 들어와 그 아이를 멋쩍게 바라 보았습니다.
"뭐하구 섰니? 친구를
보면 인사를 해야지!"
오씨가 어색함을 없애려고 하는 말에 '정이'가 적대감을 풀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 요정이라고 해!"
"뭐 요정이라고....??
그 아이는 말을 받았고 그 순간 당황한 건 오씨였습니다.
"아 아냐. 그 애는 요정이 아니고."
(오씨의 딸 이름은 '오 정이' 그러니까 오정이를 발음이 않좋게 말하여
엉뚱하게도 '요정이'로 말한 것에 오씨 아저씨가 당황한
것이지요.)
오씨는 엉뚱한 요정이 나타난 것도 문제려니와 ,
그의 딸이 그 아이의 오줌싼 것을 일러바친 꼴이 되는 것은 둘 째
치더라도
후일 '정이'와 그 아이가 친구가 되었을 때
진짜 요정에 대한 환상이 깨질가봐에 대해서도 앞서 걱정하며
순간적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하는데
그 때 그의 아내가 깨끗한 접시에 소금을 담아 와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에게 내 밀었습니다.
" 예 있다."
(옛날에는 오줌을 싸면 쌀 까부는 키를 씌우고
소금 받아 올
바가지를 들려서 보냈지만,
요즘엔 키가 없으니 그 아이 엄마가 그냥 보낸 것이기도 하였겠지만
그 아이 엄마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였지요.
그것은, 아이에게 무안을 주어 오줌싸는 버릇도 고쳐주려는 마음 이외에도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아 인사도 드릴 겸
해서였습니다.
또한 정이 엄마도 그냥 비닐봉지 같은 데다가 주어 보내도 될 일을
이쁜 접시에다가 담아 준 것은
그런 그
아이 엄마의 마음을 알아 차린 것이었답니다.)
소금 접시를 받아든 그 아이는
언제 무슨 걱정이 있었더냐는 듯이 돌아서서
현관문을 인사도 없이 나서는데 두 아이들은 벌써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천사라고 해!"
오씨의 귀에 그 아이가
정이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소리가 들려습니다.
"뭐라고?"
반사적으로 나오는 오씨의 소리에 놀라는 듯이 두 아이가
다같이 돌아보는데
이미 미소진 그 얼굴들에는 똑같이 서로의 앞니가 두 개씩 빠져 있었습니다.
"천사?"
오씨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천 사라'였는데
"나는 '천 사라'라고 해."라고 해야 할 것을
앞니 빠진 두 아이들의 발음이 않좋아서
'오
정이'는 '요정'이라 하고, '천 사라'는 '천사'라고 발음한 것이지요.)
정이와 사라는 오씨의 말에는 관심없다는 듯이 이빠진
소리로 재잘거리며
어깨도 풀지 않은 채로 옆집 사라네로 갔습니다.
조금후 오씨집 벨이 울리고 사라와 붕어빵같이 꼭 닮은
사라 엄마가
소금을 담아간 접시에 바다빛깔나는 시금치 무침을 정갈하게 담아 인사를 왔습니다.
"저 옆집으로 이사 온
'사라엄마'라고 합니다.
아까는 폐를 끼쳐 죄송했습니다.
"뭘요, 아이가 깜찍하고 이쁘던걸요.~"
두 애들 엄마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시금치가 담긴 접시에서는 참기름 냄새가 아주 고소하게 풍겼습니다.
정이네와 사라네는 그날 이후로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답니다.
끝
작가 해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살아가는 삭막한 도시 아파트 생활속에 오줌싸는 아이를 보내 옆집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려는 사라 엄마와 그의 마음을 읽고 그에 응해준
정이 엄마를 통해 이웃간의 친목을 강조한 내용이다.
예전에 어릴적 이가 빠지면 "앞니 빠진 금강새 우물앞에
가지마라, 우물앞에 가면은 붕어새끼 놀린다!"는 노래로 놀림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 소재로 두 아이의 앞니빠져 잘못된 발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작은 실수의 헤프닝들이 오히려 순수한 천사와 요정같이 비칠 수 있다는 것을 동심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요즘에 자기집 아이들이 오줌을 쌌다면 그 아이의 기를 죽인다고 오히려 쉬쉬하며 덥고 말 일을 옛 조상들은
왜 다른집 어른들에게 알리게 했을까. 그건 아마도 키를 쓰고 동네 어른들을 찾았을 때 회초리 등으로 그 키 위를 때리면 그걸 쓴 아이는 살에
직접 맞지는 않아 아프진 않지만 그 키 위에 맞아 들리는 소리에 매 맞는 것 이상의 위축된 심리를 갖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로인해 그 어른들께
경외심을 갖게 하므로써 향후 모든 어른들께 공경심을 갖게 만드는, 우리 민족이 갖게 되는 미풍양속의 근본이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지금의 아이들처럼 너나 할 것없이 독불장군이나 공주병에 속해 있는 것은 어쩌면 저런 공동체 없이 자라게 한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미 사라져간 풍습, 오줌싸는 애들에 대한 추억을 아쉬움 속에서
지난 옛이야기 하듯,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다시금 해 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여 꾸며 본 이야기 이다.
바로 그 '정이'와 '사라' 이 때의 아이들이 진짜로 천사와 요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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