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걸이
다 내려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살아오면서 온갖 걸 다 짊어졌었다
늘어진 어깨는 생의 무게를 더 했고
때론 닦을 수 없는 심한 땀도 흘렸다
의지도 없이 바람에 시달리고
햇살조차 돌아앉지 못하는 피곤함에
종일 쉴 곳만을 그리워하는데도
누구라 위로 해주는 이 없었고
눈길조차 뒤돌려 거부하던 세상
차라리 뛰쳐나가길 희망할까 했지만
그조차도 혼자만의 일시적인 생각 뿐
왜 그곳에 걸려 안달하며 산 것일까
한숨도 없이 모든 걸 버린 빈 옷걸이가
노년 휴식처럼 저 혼자 쉬고 있다
인생들
내가 죽어도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저 새들은 계속 날아다니겠지
내가 죽어도
저 꽃들은 계속 피어나겠지
어려서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
쪼그리고 앉아 내려다보던 풀꽃들을 아직도 모르는 이름으로 이 나이 들어서도 내려다보고 있다
제 맘껏 자라나는 잡초들은
걱정 없는 한 평생을 살아가건만 인간이란 내세울 것 없는 존재들이 큰 뇌 갖은 죄로 맘고생을 하고 산다
새처럼 말하고 나비처럼 춤추고 사는 건
애초에 헛된 꿈일 거야
말의 씨가 되어 누구는 화가 나고
말이 폭약 되어 죽네 마네 파편 되니
이미 금 간 유리처럼 상처 안고 사는 세상
안 찔리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걷기 힘든 말 가시밭길에
딴에 칭찬마저도 살殺은 날리니
너 나 없이 제발 닥치고 살았으면
인생아!
풍악처럼 울려대던 화려했던 어제의 즐겁던 시간들도
진주의 고요한 침착함에 묻어 숙연하기까지 한 오늘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가늠하듯 엄연하게 다른데도
그네 탄 치마 입은 처녀의 웃음처럼 오르내리는 감정은
너나 모르게 종잡을 수 없는 바람에 다시 휘날리면서
기쁨도 슬픔도 구별해대지 못하는 뱀 같은 표정으로
꾸고 난 잊은 꿈처럼 그렇게 무작정 살아가고들 있다
내 마음의 방랑자
바람만 있으면
어디 못 갈 데 없는 민들레는
작년에 인사도 없이 떠난
방랑자를 닮았었지
이 나이 예순에
그 민들레 홀씨 하나
내 가슴에서 자란다
황혼으로 가는 시간
눈부신 아침 해는 어디로 가고
달게 먹은 점심상은 흔적도 없어
홀로 취한 발걸음에 길은 멀었다
누울 자리 냉기 없는 한 뼘 땅을 찾아
숨차게 달려온 길은 돌아 슬픈데
그저 하루해가 저물기를 바라는
아무 일도 없이 앉은 툇마루 노인처럼
혼자서만 살아가는 고집스런 시간들은
구역질도 없이 헛배만 불려간다
십삼 년 초 TV 안테나
옥상 게걸음으로 오른 달이
TV 안테나에 걸려 있다
2012년 12월 31일을 기해
아날로그 간 디지털 시대에
가시 달린 흉물 되어
달 가는 골목길 깡패처럼
시비만 거는 줄 알았더니
글쎄 기지개 해가 뜨고
제 어깨 내어주자
까치가 날아와 인사하고
콩새 떼가 쉬어가더니
아쉬운 산비둘기 앉아
짝 찾는지 울어 대더라
세월은 강보다 빠르다
놀던 강가 그 나문 그대론데
날 태워다 준 배보다 먼저
흰머리 앞세워 나만 늙고 말았다
기름진 목소리는 어느새
녹슨 하모니카 소리를 내며
어긋난 화음에 낯설은 데
청아해 돌아보던 시선들을 먹고
쉽게 내뱉은 흥얼거림에도
황금색 노래였던 때가 그립다
인생
원치 않는 늙음도 오고
원치 않는 젊음도 간다
그렇게 가고 오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이
답 없는 걱정만 하고 산다
뿌린대로
나는 남에게 편지 한 통
안 보내면서도
인터넷을 켜면 늘
메일부터 확인한다
그러니 답장은 늘
광고뿐이다
일본 우익이 배려심 없다는 것은
자기나라 주재 외국인 상점들을 부수고
자기 나라에서 나가라는 무례를 범하는 등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자국에 있는 남의 나라 사람들을 때리면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 국민들 역시
남의나라 사람들로부터 보복 받는다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배려심 없는 행동이기에
외추外秋
풀린 강아지 닮아
긴 바람 쫓아 간
무심한 발자국이
가을을 밟은 건
병치레 근 일 년
살얼음 붕어 잠들
호숫가 정적은
걸음을 깨우지만
흩어진 명상은
아직 깊은 잠만 자
지난 더위 비웃고
목 움츠린 추위에
흰 백자 속 어둠처럼
하늘은 하얀데
마음은 굴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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