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치유는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이 쌓여
수채구멍을 막고
나무 하나 하나 쌓아
집을 올리듯
하루하루
암환자 치유
서둘 일은 아니지
하지만
막히는 하수도 예고 없듯
정해진 완치 날짜 없는 막연함은
암환자 가슴만 태워
강화도
마음이야 이미 가고도 남았지
노를 저어가면 얼마나 갈까
가본들 네가 없으면 어쩌지
가려해도 타고 갈 배가 없다
인사나마 마음을 주려해도
평생을 전할 쪽배 없다는 핑계로
토라진 섬 이을 고리가 없다지만
돌아보니 걸어갈 다리가 있다
이런 집을 짓고 싶소
자고나면 긴 기지개 펼 수 있는
새(鳥)집처럼 소박한 집을 짓고 싶소
비새지 않는 단칸방에
처마달린 마루 한 평이면 족하오
그럼 거기에 수시로 앉아
동으로 뜨는 해를 바라며
기대 시간 희망을 더하고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해를 느끼며
남은 여정을 돌아 그리려 하오
욕심 토해내고 웃음 마시면 족할
앞이 탁 트인 곳에 집을 짓고 싶소
초콜릿 상자만한 단칸집에
상추 심을 밭뙈기 두 평이면 족하오
괭이 던져 함부로 누인 채
볕드는 한 평 마루에 앉아
작은 돌만한 소망 하나 접시에 담고
숨 넘어 가는 세상 뒤돌아보며
한 잔 술 예의 없이 마시려 하오
시골 인사
가는 내 인사가 고마웠던지
오는 인사로 할머니가 웃는다
꺽은 실가지 달린 연시 두 개와
여리게 푸른 애호박 두 개를
거친 손으로 수줍게 내미신다
보나마나 달디달 홍시감은
미리부터 식욕안달을 보이지만
이웃 사촌 된 할머니 정을 그려
며칠 장식품으로 두고 보련다
함부로 된 생채기 하나 없고
광택까지 더해 온 감과 호박은
정 플러스 멋진 데코레이션이다
옆집 개를 닮은 암환자
천둥 짖는 개보다
황소만 한 개보다
나비 같은 고양이 이고 싶다
종일 묶여 지내느니
폴짝 개구리 쫓고
깡충 잠자리 잡는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헌데 병 치유를 위해
행동반경이 좁은 나는
목소리도 크지 않고
몸은 외소 해졌는데도
종일 묶여 사는 옆집 개와 닮았다
황혼으로 가는 시간
눈부신 아침 해는 어디로 가고
달게 먹은 점심상은 흔적도 없어
홀로 취한 발걸음에 길은 멀었다
누울 자리 냉기 없는 한 뼘 땅을 찾아
숨차게 달려온 길은 돌아 슬픈데
그저 하루해가 저물기를 바라는
아무 일도 없이 앉은 툇마루 노인처럼
혼자서만 살아가는 고집스런 시간들은
구역질도 없이 헛배만 불려간다
암 선고
경로당(敬老堂) 좋아한다는 암이
내게도 찾아온 걸 보면
나도 제법 나이가 들었나봅니다
침윤성 암이라
재발과 전이가 부득이하다는
신장 요관암과 방광암으로
남들은 하나도 어려워한다는데
동시에 두 곳에나 찾아왔으니
무턱대고 반길 수도 없고
또 내칠 방법도 몰라
그저 공허한 웃음만
실없이 남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인사
떠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왜냐는 이유는 필요도 없고
어떠냐는 설명도 소용없습니다
오늘도 머리 위엔 여전히
예전의 하늘 그대로지만
내 갈 곳은 별처럼 먼 곳입니다
둘러 주섬주섬 마음을 담아
갈 때가 되어 인사를 해야겠는데
딱히 인사 말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올 때 웃음으로 맞았을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그저 웃으며 가려 합니다
내가 갈 곳은
누구 한 사람 잘 갔다는 소식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곳입니다
주해 - 암 선고로 수술을 받고나서 겉으론 안 그런 척 했지만
속으론 어찌나 자괴감에 빠지던지 ...
당시의 심란했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항암 여행
내일부터는 방사선 타고 여행을 다녀 올 겁니다
원래부터 마뜩치 않은 먼데 있는 길이긴 하지만
티켓을 받으면 꼭 다녀와야만 하는 코스라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쫓기 듯 가는 겁니다
원치 않는다는 투정이 사치라는 걸 이미 알기에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왜이리 서글픈지 모릅니다
겉으로 강한 척 해보이려는 미지근한 태도가 더
감춰 둔 속마음을 아프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마음 보따리들로만 채운 여정 계획이라지만
여행에서 자칫 방향을 잃어 먼 우주로 돌아올 경우
한 달 보름 예정이 혹여 내 의지와는 또 다르게
후유증으로 긴 시간을 더 요할지도 모를 일이니
다녀온 후 긴 여독으로 혹시 머리칼이 다 빠지고
밴댕이 가시처럼 말라깽이가 돼 버릴지 모르지만
몸이야 망가져도 호킹박사처럼 머리만 살아있다면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내기를 바랄 뿐입니다
남은 항암 일기
정말 구월이 오는 것일까
아직도 남은 일주일이 멀기만 한데
하루하루 제대 날짜를 꼽는 병사처럼
마지막 항암 날짜를 세고 있다
누구는 눈 한번 깜박이면 지날 거라 하고
누구는 잠 한번 자고나면 지난다지만
초침소리를 들으며 잠들지 못하는 뒤척임과
들숨과 눈 깜박임조차 못할 고통에
진정 새벽은 그래도 오고 있는지
어찌 나뿐이랴 암 환자가하지만 끊어지는 남의 팔다리 고통보다도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고
내 암 네 암이 비교될 수 있을까
그래도 가는 해와 달을 따라시간 고장이 나지 않음에 감사해야지
쓰린 입 쳐진 몸에도 살아있음에 좋아해야지
여명을 뚫은 동튼 해가 더 밝듯이
어두운 몸뚱이 밝아질 날을 기대해야지
누구를 위한 병원일까
추석도 아니건만 방사능만 같아라
암 치료에 탁월하다는 방사선을
한 달 넘게 쪼이고도 모자라
MRI에 CT에 방사능 노출이니
특진비만 높은 허접한 의사는오늘도 컴퓨터만 바라본 채
내 안색엔 관심조차 없이
기계식으로 같은 말만 해온다
기다리는데 30분이 무색하게도채 3분도 안 되는 시간의 말은
아픈데 있나요? 약 잘 먹지요?
다음 주에 다시 오십시오다
머리칼이 슬프다
민둥산 삽질로
한 그루 심는 나무처럼
대머리 치료는 몰라
생나무 톱질 한 번 없이
살아왔는데
항암은 다 그렇다고
머리숱이 가슴을 난도질 하며
잡히는 대로
한 움큼씩 욕을 뱉는다
가슴은 언제부터
뼈에 머리칼을 심어
깎아대는 고문을 할까
남 데인 얼굴 깊은 상처도
모두 이해한다며
너그럽던 가슴인데
뭉텅
손에 쥐어지는 머리칼마다
가슴까지 칼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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