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회상
뒤늦은 내 눈에 눈물 이는 건
아파하던 슬픔 역시 묻어 두고서
무던히도 참아내던 그 마음을
이제야 돌아보니 사랑이었소
사랑이 그 무언지 알 수 없어도
임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어
서랍처럼 꼭 안기는 연정인 것을
이제야 이해하기 때문이라오
조강지처糟糠之妻
살아라 아내들이여
어려워라 조강지처
얼마큼 허리 휘게
고생을 이고 사나
좋은 시절 돌아오면
자신 있게 얘기할 말
자신 있는가 아내여
내가 조강지처였다고
기다림은 멀다
남의 아이들은
빨리 크는데
내 아이는
그대로인 것처럼
남의 시간은
화살 같고
기다리는 내 시간은
먼 우주만 같다
굴렁쇠 같은 시간은
똑같이 돌고 있는데
수락산에서
걸음대로 떨어지는
큰 물소리가
집바위 상바위를
돌아가는데
백 년을 닦지 않은
몸을 두고서
하루 종일 일도 없이
돌만 씻긴다
가난뱅이 가슴이
초라해진 건
부잣집 창고 같은
물 많은 계곡
이제 그만 산 너머
서울 가려니
불암산 가로막혀
못 가는 것은
술 한 상 받아 놓고
붙잡힌 탓에
산 핑계라 말하지만
내 핑계라네
처마 끝 빗방울
후루룩 후루루룩
물 국수 먹는 소리
처마 끝 보석들이
고명처럼 묻어나면
푸루룩 푸루루룩
민들레 떠나가듯
소멸된 한풀이로
젓가락 땅 파논다
상한 마음을 돌려줘
정으로 살자하니
입이 투정 부리고
모두 끌어안자니
가슴이 조그맣다
넓은 가마솥처럼
커지길 원하지만
변한 누룽지처럼
마음이 거부하니
어찌해야 달래보나
내 맘 같이 빌어보나
싫은 마음 어찌하고
내 속 전부 줘야 하나
상한 마음 돌려 줘
헌상된 제물祭物처럼
눈물일랑 남겨 둬
감춘 비상금처럼
소사 복숭아
싫다면서 떠난 임 보내 놓고서
낙엽 떨어지면서 잊으려 했고
또 다시 생각말자 가버린 임을
눈꽃 떨어졌을 땐 잊고 있었지
아련한 그 과수원 소사 복숭아
다시 또 봄 계절은 찾아왔는데
분홍빛 그 언덕들 이제 없으니
임 생각만 멍울져 가슴에 남네
막걸리가 생각난다
출출한 배에 막걸리가 생각난다
희뿌옇게 걸걸한 탁주를
떡 벌어진 허연 사기사발에
양은 주전자로 괄괄 쏟아 붓고
침 한 번 미리 꿀꺽 삼키고
벌컥벌컥 단숨에 마시고는
'크~ 조 오 타!' 하고
빈 잔 놓고 손 거두며
손 등으로 입가에 묻은 허연 술기
쓰윽 문지르고는
엄지손가락만 한 무에
오징어 발처럼 매달린 무청이
고춧가루 양념과 잘 섞여
발그스레 화장으로 잘 익은 총각김치를
얇싸한 흰 접시에
손바닥 두께로 화투짝 만하게 썰어
가지런히 모아둔 허연 두부를
톡 식탁에 친 젓가락으로 집어
척 얹어 한 쌈 집어
가마솥처럼 입 크게 벌려 넣고는
우적끈 우직끈
물장수 꾼 입맛 되어 먹던
막걸리가 생각난다
꽉 막힌 도로에서
"차가 왜 이리 많아!"
자기 차 안에서
투덜거리네
희망을 갖고 사는 수밖에
하나 둘 포개진 삶들은 어느새
고물상 더미다
헝클어진 머릿속
다시 백지 되어
하나하나 새로 쓰면 좋으련만
갈수록 칡넝쿨 늘어만 나고
허전한 인생은
장롱 밑 먼지 된지 오래지만
욕심은
궁전의 매끈한 대리석이길
기대하며 산다
어쩌겠어!
빌며 살아야지
그렇게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술술 풀려지기를
기도하는 두 손 되어
살아보는 수밖에
인생의 시간
수도승에게 목회자에게
도박자에게 댄서에게도
똑같은 시간이 부여되었다
심지어 도둑놈 모두에게도
저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두 팔 벌려 하늘에 외쳐
어찌 보낼 것인가 묻지 마라
답은 스스로의 몫이니
갈림길에 선 나그네인가
길을 잃은 방랑객인가
누가 제 길을 제대로 가는가
누가 후회 없는 길을 걷는가
쓸데 없는 객기는 팽개쳐버리고
자만도 빈 껍질처럼 다 없애버려
오지 않을 그 시간 용서를 위해
뒤돌아 가지나 말았으면 해
고통의 비교
하룻밤 악몽이
십 년을 보낸
폭포수 아래처럼
땀을 흘린다
몇 날을 그렇게
진저리 치며
긴 못을 안고
살아야 할까
어제의 밤은
다시 찾아와
쉬어라 하지만
몸은 다르다
잡히지 않고
그릴 수 없는
시간은 또 다시
허우적 거리고
병원 안 가는
몸이면서도
형틀의 묶인 듯
크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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