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면 달 뜨고
가슴을 불태우는
윗마을 총각과
수줍어 고개 내민
아랫말 처녀
산 너머 따라가는
장난치긴가
저 총각 잠 못 참아
눈감아 들면
산 너머 미소 처녀
술래가 된다
땅地
하늘 아래 눌렸으되
패이고 솟아난다
물 풀어 숨을 쉬고
뿌리가 입이 되니
싹들이 자라난다
생명이 자라난다
흙 일어 삶이 되고
희로애락 창조하니
보배로운 새 생명
잉태하는 이 땅은
자애로운 어머니
만능의 자궁이라
소낙비 그리고 맑음
꾸지람으로 내려앉은 무거움
동반자의 오만한 거들먹거림
실체 없이 사람 놀라게 하는 화통
쏘아대는 외계인의 무기 같은 바늘
후퇴를 불사하는 돌격 앞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우격다짐
반항마저 거부하는 확인 사살
개평도 용납지 않는 싹쓸이
비굴하게 고개 숙인 변절의 질퍽거림
그리고
던진 구슬 깨지면서 빛내는 반짝임
고목古木의 변辯
너희가 태어나 고작 백 년도 못 살면서도
너무나도 주인 행세를 하려는 구나
나는 살갗이 변색되고 떨어져나가도
새 살을 내어 회춘하기를 수 백 회
나는 천 년을 살아 온 느티나무라!
벌거벗은 네 어린 모습들은 물론이요
너희 조상들의 삶 역시 내가 다 봤듯이
오랜 세월을 그리 살아 왔건만
너희들의 어른 모시기 행태에는
분개 아니 할 수가 없구나!
백수 노인처럼 극진한 대접을 바라진 않아
성황당 같은 치성도 원치를 않아
허나 매연과 가스에는 살 재간이 없구나
그러니 너희 후손들까지 더 보려 하나
아! 병사病死 아니하길 바랄 뿐이라!
궁산
하늘천따지 들려오는 조선의 향교가
야트막한 구릉 뒤로 둥지처럼 앉아 있는
강서구 한강 옆에 궁산이란 산이 있다
강 건너 난지도와 인사하며 마주 있고
행주산성 초병처럼 좌전 방에 있으면서
남산이며 삼각산도 친구처럼 보여 온다
한적하다 편하구나 내 살 곳이 여기던가
주단 같은 금잔디가 마음을 놓으라니
물가 내린 철새처럼 비행기도 앉는구나
비 오기 시작하는 흙 마당
안긴 엄마 모유처럼
마당 빗물 고여 들면
신발 쫓아 오른 먼지
강아지 따라 누워도
잠자리 날개처럼
흙냄새 피어올라
장난 친 애 손인가
내 코만 간지러워
달 없는 대보름
누가 벌써 먹었을까
귀밝기 술
안주 삼으려 했는데
대보름
빈대떡 달이 없다
흰 눈 (보상報償)
지은 죄도 없이 잡혀
도망치려 애태우던 밤
꿈자리가 사나웠다
눈 뜬 아침
검은 꿈 덮어 준 것일까
세상이 온통 하얗다
장마
미운 놈 추억처럼
눅눅히 습기가 올라온다
논바닥 갈라지 듯
메마른 건조기 땐
비 와달라고
빌어대더니만
이것도 아니라며 징징
청개구리 울음을 불어 댄다
오월 장미
꽃 피우더니
오월 장미가
성깔을 부린다
가시 떼어내면
빨간 립스틱 지우고
온순해질까
봄날이 미쳤다
겨울 콧물 아직도 달고
눈眼은 종일 흐리다
산발한 머리칼은
황사바람 만드는데
막힌 귓구멍은
불러도 대답 없다
주해 -
2010년 4월 봄날이 미친 사람 같다
장마도 아니건만
겨울철 흐르는 콧물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
이미 미친 사람 눈동자처럼
사월 내내 흐린 날씨 역시
도통 맑은 하늘을 볼 수가 없다.
머리칼을 흩날리는 바람까지
황사를 겹쳐 뿌려 오는데
이런 100년 만에 최저 기온이라는 정신 사나운 봄날
6월 2일 선거에 임하는 정치가들의 구호에
이미 미쳐버린 귓구멍에는 들릴 리가 없다.
몹쓸 사월
천안 함 가족들 피눈물 같이
꽃잎도 따라 벌써 떨어지더니
봄날은 뒤돌아 어디로 가고
서늘한 민심인 듯 차갑더이다
말없이 구르는 바퀴를 따라
못 다한 오월은 오고 있건만
이미 기대 버려진 빈 수레처럼
정치가 구호들만 요란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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