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와 문제아
모범생과 문제아
"귀하는 품행이 방정하고 타에 모범이 되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이는 학생 때 운동장에 모인 여러 학생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상장을 받는 내용의 흔한 일부이다.
이와 같이 학생 때는 늘 남에게 거슬리지 않고 모나지 않게 본 받을 만한 사람이 되길 가르친다. 그래서 하라는 것만 한 이들은 모범생이었고, 하지마라는 걸 한 이들은 문제아였다. 모범생인 그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늘 하라는 것만 하고 살았다.
그럼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 진정으로 올바른 일일까를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참으로 많은 의문 부호를 떠오르게 만든다.
조선시대 여자들의 그림에는 도서(낙관)가 없다.
그건 조선시대에는 여류화가가 없기도 했었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여류화가가 없었던 것은 그 조선시대에는 여자가 그림을 그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모든 그림에도 도서가 없다. 도서를 찍으면 하지 마라는 걸 어긴 사람이 되니 도서를 찍을 수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드러 내놓고 그린 것이 아니라 집에서 몰래 숨어 그린 것이었다. 그런대도 신사임당의 그림은 한두 번쯤 대충 그려 본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열정과 집념을 일생일대에 걸쳐 보였던 화가였던 것이다.
그렇게 신사임당은 그 시대에는 하지 마라는 걸 한 대표적인 여성이었다.
홍길동을 지은 저자 허균의 여동생인 허난설헌 또한 그렇다.
조선시대 당시 시조는 남자들이나 하는 것이었고 굳이 여자들일 경우 황진이 같은 기생이 양반의 반주삼아 풍류로 즐기는 정도였으나 양반의 여식인 난설헌은 시조를 했다.
지금으로 치면 그야말로 문제아(?)였던 것이다. 삶이 난설헌을 그렇게 만든 것이야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허난설헌은 알려지지도 않았었고 오히려 중국에서만 그 이름이 알려졌을 뿐이었다.
허나 지금으로 본다면 그 두 여성의 가치는 어떠한가. 그야말로 과거를 대표하는 보물들이지 않는가.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었을 당시 지동설로써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따라 돈다고 주장하여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이단아가 되었다.
왜정시대에 독립군 역시 하지마라는 대표적 인물이었고, 제3공화국 내지는 제5공화국,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반기를 들고 덤빈 민주투사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지금 같은 민주사회를 경험하고도 있다.
일전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느 강연회에서 말하길, 우리나라가 저 출산 문제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게 다 누구 때문이란 말인가.
자녀를 한 둘만 낳자고 한 팔십 년대의 전두환 정권의 공무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된 행정들이 지금의 그 대가를 치루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심지어는 둘도 많다면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떠들어댔던 그 판단들은 다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때의 국민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따라해야만 좋은 시민이고 훌륭한 국민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한 둘만 낳고 살아왔다.
그런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하지마라는 즉, 자녀를 셋 아니 그 이상을 둔 가정들이 간혹 있었는데 다들 하나 아니면 둘인데 반하여 겪어내야만 했던 외계인처럼 보던 시선들을 아랑곳 하지 않은 바로 그들이야말로 그저 시키는 대로만 아무 생각 없이 따라했던 이들에 비해 훨씬 더 앞을 내다보는 선지자들이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모범생과 문제아는 그 시대가 단편적으로 보는 시각일 뿐이지 거국적 또는 역사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문제아가 인류 삶의 질을 높이거나 개선해 나가는데 일조 했다.
그래서 그런 걸 아는지 아이러니컬하게도 요즘 이름 있는 연예인들이나 개그맨들의 이야길 듣다보면 대개가 자칭 문제아 반항아였다고 힘주어 떠들기도 한다.
하긴 위와 같이 세상을 바꾼 이들이 대개가 얌전한 사람들 보다는 모진 풍파를 견뎌 낸 풍운아들이었으니 그런 문제아(?)를 사고자(?)와 구분하여 잘만 쫓는다면 영웅 없는 이 시대 긍정적으로 추종할 만도 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