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칼럼 2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할까
와정보
2021. 12. 28. 16:23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할까 / 정보 칼럼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현대를 상징하던 증기기관차는 박물관으로 간 지 오래고 컴퓨터 시대가 오더니 어느새 슈퍼컴퓨터가 등장하는 등 어제의 과학이 과학이 아닌 것처럼 빠른 변화를 가져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요즘은 다변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 사회가 됐지만 이 또한 벌써 올드타입이 되어 앞서가야만 하는 이 시대에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이젠 퇴물이 되는 사회가 되었는데 그래서 이제는 이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도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이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뉴타입의 시대로의 변환인 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적 감각이고 명제인 것이다.
인간은 늘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주하려는 삶을 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선 그 안주가 삶을 낙후시키고 그 낙후는 경쟁을 피하려고 해도 참여하게 되는 경쟁에서 결국은 패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으니 문제 해결을 넘어 또 다른 문제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파악해야 만이 선지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을 걱정하며 지배하던 종교도 이젠 대중들의 걱정을 오히려 주고만 있다.
과거에만 집착하던 탓으로 과학으로 변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변화한 것을 종교인들만이 모르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이미 시대가 변해 하나님의 존재가 허상이라는 문제를 대다수의 사람이 파악하고 있는데도 종교인들은 과거 우상숭배 하던 행동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만 있으니 종교가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부장적이던 부모와 같이 사부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는 조선 시대의 사고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로마인들처럼 고루한 선생들의 발상 역시 학부모나 학생들보다 항상 뒤처져 있는 교육계 역시 종교인들과 다르지 않다.
하긴 예측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더욱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 대선에 임하는 정치적 양비론을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임진왜란을 불러올까 두려운데 거기에 무슨 말장난 잘하는 사람이 난 사람처럼 인식되는 세태에는 더욱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자국의 경제만을 외쳤던 트럼프를 선택했던 미국은 도덕이라는 가치를 크게 잃은 걸 보면 통치란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것으로만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미래만 주장해서도 안된다. 온고지신으로 노자의 도덕과 공자의 인의를 아우르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은 물론 시대에 공존하는 폭넓은 인식과 실행력을 갖춘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미래를 얘기할 때, 그의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했으니 과거 행정 경험이 뛰어났던 인물을 선택하면 된다. 그저 한 때의 인기만으로 행정 경험조차 전무했던 사람이 내세우는 미래는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경험은 했으되 무사안일로 그저 자기 보신만을 위해 지냈던 인물 또한 그저 그렇다.
그러므로 국민 스스로가 현실적 문제의식을 똑바로 갖고 리더쉽의 다양성을 제대로 보며 국가 미래를 제대로 실현해 줄 인물을 선택해야만이 이미 들어선 선진국으로의 비젼에 어울리는 국가가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필요 선택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제발 단편적인 판단으로만 나라의 미래를 선택하지 말기를 지혜로운 다수의 국민에게 전하고 싶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현대를 상징하던 증기기관차는 박물관으로 간 지 오래고 컴퓨터 시대가 오더니 어느새 슈퍼컴퓨터가 등장하는 등 어제의 과학이 과학이 아닌 것처럼 빠른 변화를 가져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요즘은 다변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 사회가 됐지만 이 또한 벌써 올드타입이 되어 앞서가야만 하는 이 시대에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이젠 퇴물이 되는 사회가 되었는데 그래서 이제는 이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도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이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뉴타입의 시대로의 변환인 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적 감각이고 명제인 것이다.
인간은 늘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주하려는 삶을 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선 그 안주가 삶을 낙후시키고 그 낙후는 경쟁을 피하려고 해도 참여하게 되는 경쟁에서 결국은 패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으니 문제 해결을 넘어 또 다른 문제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파악해야 만이 선지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을 걱정하며 지배하던 종교도 이젠 대중들의 걱정을 오히려 주고만 있다.
과거에만 집착하던 탓으로 과학으로 변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변화한 것을 종교인들만이 모르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이미 시대가 변해 하나님의 존재가 허상이라는 문제를 대다수의 사람이 파악하고 있는데도 종교인들은 과거 우상숭배 하던 행동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만 있으니 종교가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부장적이던 부모와 같이 사부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는 조선 시대의 사고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로마인들처럼 고루한 선생들의 발상 역시 학부모나 학생들보다 항상 뒤처져 있는 교육계 역시 종교인들과 다르지 않다.
하긴 예측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더욱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 대선에 임하는 정치적 양비론을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임진왜란을 불러올까 두려운데 거기에 무슨 말장난 잘하는 사람이 난 사람처럼 인식되는 세태에는 더욱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자국의 경제만을 외쳤던 트럼프를 선택했던 미국은 도덕이라는 가치를 크게 잃은 걸 보면 통치란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것으로만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미래만 주장해서도 안된다. 온고지신으로 노자의 도덕과 공자의 인의를 아우르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은 물론 시대에 공존하는 폭넓은 인식과 실행력을 갖춘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미래를 얘기할 때, 그의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했으니 과거 행정 경험이 뛰어났던 인물을 선택하면 된다. 그저 한 때의 인기만으로 행정 경험조차 전무했던 사람이 내세우는 미래는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경험은 했으되 무사안일로 그저 자기 보신만을 위해 지냈던 인물 또한 그저 그렇다.
그러므로 국민 스스로가 현실적 문제의식을 똑바로 갖고 리더쉽의 다양성을 제대로 보며 국가 미래를 제대로 실현해 줄 인물을 선택해야만이 이미 들어선 선진국으로의 비젼에 어울리는 국가가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필요 선택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제발 단편적인 판단으로만 나라의 미래를 선택하지 말기를 지혜로운 다수의 국민에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