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칼럼 2
찌라시 글들에 대한 단상
와정보
2020. 5. 2. 16:02
요즘 SNS를 통해 많은 찌라시 글들이 마구 전해져 온다.
이런 글들을 보면 과거 어느 다이어리 뒷면에나 보이던 모둠 명언 글들이 떠오르는데 글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깊이는 모르더라도 저런 글이나마 알지 못하는 깨달음이라도 짧게 얻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영화를 전부 보지도 않고 팜플랫만 보고 영화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처럼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카네기 인생론 같은 책들에서 단 몇 줄을 발췌하여 앞뒤 설명도 없이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는 사서인 중용을 읽고 대의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짧게 단어만 갖고 자기식 해석으로 중용을 마치 양쪽 중간에서 눈치나 보는 적당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우려를 나을 수 있는 것처럼 찌라시 글들 역시 짧은 편협함에 대해 나무라고 싶은 것이다.
찌라시 글들을 보면 대개 이런 것들이 있다.
'5m만 더 가면 산장이 있는데
얼어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는
'모래 언덕 너머 오아시스가 있으니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마치 인생의 맨토처럼 말하는 글들이다.
얼른 보면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겠만 정말 인생철학을 모르는 말이다.
코앞에 산장이나 오아시스가 있는 걸 알고 죽는 사람이 있을까.
코앞일지언정 모르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남이 죽고 난 후에 재산이 많더라며, 다 쓰거나 기부라도 하고 죽지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 당사자는 죽을 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모르겠기에 살아갈 동안의 돈을 쥐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과 같은 것이다.
90세에 돌아가신 분이 사망하기 며칠 전에도 주위 사람들에 대해 흉보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과론으로 보면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이 너그럽게 다 이해할 일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남들이 볼 때는 다 죽어가는 사람조차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여태껏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향상성을 죽는 순간까지 갖고 사는 것이 인간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
살면서 알고 난 후의 결과론은 늘 말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내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기에 무조건 도전하고 포기하지 마라고만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포기할 때 포기를 모르고 인생을 더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무지한 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무분별하게 퍼나르는 짧은 글들을 비판하려는 것은,
있지도 않은 현실을 기대하며
코앞에 목표가 있을 것이라는 망상속에 10년을 떨어지면서도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고시생들의 망쳐놓은 인생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에게 따질까. 100만명 중 한 명에게 일어난 일을 99만명이 따라하다가 보는 손해들에 대해 필자가 지적하는 바 대로 깊은 인생철학 없이 한줄의 짧은 지식만을 쫓는 우를 범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글들을 보면 과거 어느 다이어리 뒷면에나 보이던 모둠 명언 글들이 떠오르는데 글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깊이는 모르더라도 저런 글이나마 알지 못하는 깨달음이라도 짧게 얻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영화를 전부 보지도 않고 팜플랫만 보고 영화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처럼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카네기 인생론 같은 책들에서 단 몇 줄을 발췌하여 앞뒤 설명도 없이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는 사서인 중용을 읽고 대의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짧게 단어만 갖고 자기식 해석으로 중용을 마치 양쪽 중간에서 눈치나 보는 적당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우려를 나을 수 있는 것처럼 찌라시 글들 역시 짧은 편협함에 대해 나무라고 싶은 것이다.
찌라시 글들을 보면 대개 이런 것들이 있다.
'5m만 더 가면 산장이 있는데
얼어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는
'모래 언덕 너머 오아시스가 있으니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마치 인생의 맨토처럼 말하는 글들이다.
얼른 보면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겠만 정말 인생철학을 모르는 말이다.
코앞에 산장이나 오아시스가 있는 걸 알고 죽는 사람이 있을까.
코앞일지언정 모르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남이 죽고 난 후에 재산이 많더라며, 다 쓰거나 기부라도 하고 죽지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 당사자는 죽을 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10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모르겠기에 살아갈 동안의 돈을 쥐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과 같은 것이다.
90세에 돌아가신 분이 사망하기 며칠 전에도 주위 사람들에 대해 흉보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과론으로 보면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이 너그럽게 다 이해할 일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남들이 볼 때는 다 죽어가는 사람조차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여태껏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향상성을 죽는 순간까지 갖고 사는 것이 인간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
살면서 알고 난 후의 결과론은 늘 말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내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기에 무조건 도전하고 포기하지 마라고만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포기할 때 포기를 모르고 인생을 더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무지한 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무분별하게 퍼나르는 짧은 글들을 비판하려는 것은,
있지도 않은 현실을 기대하며
코앞에 목표가 있을 것이라는 망상속에 10년을 떨어지면서도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고시생들의 망쳐놓은 인생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에게 따질까. 100만명 중 한 명에게 일어난 일을 99만명이 따라하다가 보는 손해들에 대해 필자가 지적하는 바 대로 깊은 인생철학 없이 한줄의 짧은 지식만을 쫓는 우를 범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