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시집7

제2장, 일기

와정보 2012. 3. 17. 00:23

불면(不眠)

 

들키면 안 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밤새도록

비가 내리면

 

예민한 범종 귀는

밤새워 열려 

빗소리 노랫소리

구분할 줄 모르고

 

언제였던가

덤벼 든 하얀 새벽

걸지도 않은 빗장

속눈썹 스스로 열어

  

 

 

 

 

 

일기 6월 10일 맑음


몸을 담궈 준 하늘이

홍천 계곡 물처럼 맑다

바람은 어제완 달리 

당김 없이 뽀송 하다

 

 

 

그래선지  나뭇잎 역시

연푸름을 버리고 

짙푸름으로 가고 있다

 

결혼 소식이란 귀걸일

오늘도 떼어내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난 과거가

삼류 영화관 스크린처럼 

또렷하지 않게 스쳐간다

 

얼마나 되었을까

푸름에 빠진 몸을 인식하곤

진저리로 과거를 털었다

 

어느새 내려가는 계단이

발 밑에 딸려 온다

 

 

 

 

 

 

 

발아(發芽)

 

 

꾹꾹

 

단감을 먹다가

뱉어 논 씨앗

장난삼아 빈 화분에

눌러 놓은 건데

 

한 달쯤 지났을까

애기 손 같은 싹이

세상 궁금한 지

얼굴을 내밀었다

 

그로부터 두 달

얼룩송아지처럼

벌써 그 씨 아니랄까

감나무 흉낼 낸다

 

 

 

 

 

 

 

흐린 날

 

온통 적신 몸 

하늘이 벼루

 

불타고 남은 

가슴은 잿빛

 

먹물 갈아라 

먼 산 그리게

 

 

 

 

 

 

도시 개구리

 

그 어디서 왔을까

외로이 떠는 부름

 

빛도 없는 밤 하늘 

내 방 불빛을 따라

창가에 붙은 자객  

 

너는 남이야

어울리지 않는 타인

 

왕따가 찾는 멘토처럼

나를 불러내려고

떨흙 숨어 신호 해

 

 

 

 

 

 

 

심보 

 


탄생을 보면 슬퍼져

장례식 가면 웃음도 나고

이혼 얘길 들으면 재밌기도 하지


무슨 심보일까

 

 

 

 

 

죽음 

 


화려한 죽음은 없다

쓸쓸한 죽음도 없다                             


사라져 가는 데는

그 혼자만 가는 것

 

 

 

 

 

은유 시

 

선종禪宗 같은 시를 치는 것도 아니지만

은유 없이 문장만 수려한 시도 아닌 건 

조미료 친 음식처럼 순간 맛있긴 해도

뒷맛을 남기는 된장 같은 맛은 안 나

 

 

 

 

 

 

 

인생의 가치  

 

 

향기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듯이

떡히 알기 힘든

인생의 가치 역시 

벌 나비처럼

그 향기를 찾고자

무던히 노력할 때

가치를 찾게 되리라 

 

 

 

 

 

부럼은 깼을까



땅콩을 먹고 난 자리처럼 

흔적 남은 과거가

미래와 닿은 지금 이 시간


속 깊이 너희들을 묻고

대보름 오늘도 

깨트릴 호두껍데기는

오래된 실타래처럼

묵은 때가 짙게 타 있다

 

 

 

 

 

한계

 

 

지나는 새야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도사 어깨 위 무게는 가벼워라


나는 내 밥 숟가락에 얹힌

남의 시선도 돌만큼 무거운데

가부좌 틀고 앉기만 하면 도사되랴

 

 

 

 

 

수목장

 


나 죽으면

아무 산 웬만한 나무 밑에

내 뼈 가루 묻고

 

적당한 세월이면

썩어 없어질 나무 팻말 하나에

이렇게 써 줬으면


“시인, 정보井甫 이 곳에 소풍 오다.”


 

주해 :

나는 사후 세계라는 말도 믿지 않지만

죽어서도 끝까지 차지하려고만 하는

땅이며, 만년을 가도 없어지지 않을 비명碑銘에 대한 

인간들의 욕심에 대해 혐오하는 사람이다.

 

인간!

자연에서 돌아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