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비非 사계四季
대보름 이틀,
얼마나들 빌었으면
달이 닳았다
주해 -
그렇게 크고 둥그렇던 대보름달이
불과 하루 이틀 지나자마자 일그러지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대보름 날 청정수 떠 놓고
두 손 모아 비비던
그 많은 어머니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패도 없는 내게
무명실 같은 비가
자꾸 감겨 와
전자책,
뱃속의 염소
종이를 삼키다
주해 -
책상에 종이가 사라져 가는 시대는 벌써부터 있어 왔다.
그러더니 이제는
전자책들이 종이 먹는 염소처럼 종이책을 먹어 치운다.
난초蘭草,
난초亂草인가
어지럽구나
장미,
가시를 숨긴
꽃뱀인가
들,
한우고기를 먹고 싶다지만
나는 까마귀고기가 먹고 싶다
장례,
흰 국화 제단
남은 이 홀로 더 창백하다
벤쿠버 올림픽 연아!
눈물로
금메달을 만들 수만 있다면
시에
과학을 들이대면
낭만이 지쳐
술,
큰 잔 큰 입
간도 클까
시계時計는
종일
대밭에서만 사나
주해 -
평소엔 들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 불쑥 자라나 있는 죽순을 보는 것처럼
초침소리도 어느 순간 들려온다.
입口아!
때론 잊으라
가슴을 위해
저녁노을은
갱년기 홍조 된
해의 귀갓길
집착,
변절 없는
고양이 눈의 수정체
술,
없던 신화도 만들어 내는
최고의 작가
우요일,
목이 부르는 술
그리고 빈대떡
드런 물 먹고도
피부 고운
부레옥잠
숙우宿雨,
배고픈 하늘이
함흥냉면을 먹어
주해 -
‘숙우 : 며칠을 연이어 오는 비.’
그렇게 함흥냉면처럼 끊이지도 않고
질기게 비가 내린다.
낙숫물,
찰싹 찰싹 고인 물
게으르다고
나무라며 때리는
회초리 선생
빗소리는
연인들 천둥소리
커지는 심장소리
군락 초,
뿌리도 한 뿌리
모여서 살자
모양도 같으니
의견도 같이
두려운 내일은
내 몸 안에 벌레
오랜 사랑은
밥투정
주해 -
사랑이란 묘약은 잠시 뿐일까.
오랜 사랑은 밥투정처럼 싫증을 내.
사랑은
시가 아니라
타고난 메커니즘
주해 -
사랑은 시처럼 달콤함이 아니라
정해진 호르몬 분비처럼
메커니즘에 의해 흘러가는 것.
하긴 시에 과학을 드리대면
낭만이 사라지긴 하지...
해변가도 아닌데
떼로 벗은
전기구이 통닭들
밥투정하는 녀석,
“내가 토끼에요! 풀만 먹게!”
“그럼 네가 사자냐?
꼰 다리처럼
삶이 저려 오더라도
남을 원망하진 마라
그 다린
스스로 풀면 되는 일이니
일요일,
빈 술병처럼
몸이 한가하다
슬픔 없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꼭 여자만은 아니지
착각,
욕정을 품은 달이
창 밖에서 나만 봐
빅문(Big Moon),
사진 속
빅맥을 닮았다
주해 -
빅문 : 지구와 달이 가까워져서
지구에서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때의 달을 가리키는 말.
빅맥 : 맥도날드 큰 햄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