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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는 슬퍼

와정보 2010. 6. 30. 19:38

내 국민학교 때의 기억은 슬퍼


국민학교 얘기만 들어도 아픈 가슴이 싸해 오는 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가 살기 힘든 때였긴 했지만 

단칸 셋방이라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애들이 부러웠던 나는

그나마 셋방조차도 없어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눈칫밥을 먹으며 어렵게 다닌 시절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찌 학교를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웠던 과거...

가정이 풍비박산 나면서 부모 형제들 다 흩어지는 바람에

국민학교 2,3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왕십리서 혹은 소사(현 부천)로

친척집을 전전하며 전차 혹은 기차로 통학을 했었다.

그 옛날 난방시설도 없던 겨울 전차에서 떨며 왕십리 이모네서 본동까지의

전차 통학은 지금 생각해도 초등 3학년짜리에겐 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다시 이곳저곳 친척집을 옮겨 다니다가 소사에 살던 고모네집으로 가서

기차 통학으로 몇 년을 다닐 땐

2원 50전 하던 전차표 값이 없어 여러 정거장으로 걸어가서 

기차를 타기도 했었는데

그러던 중 5학년 초기 때엔 소사로 귀가하던 달리던 기차에서 떨어져서

죽다가 살아나기도 했었던,

아무튼 국민학교만 생각하면 내게는 쌔드무비 그 자체였었다.


어느날엔 학교 육성회빈지를 안 냈다면서

반 아이들 창피하게도 담임선생님이 나를 호명하며 앞으로 나오라하시더니

교장실에까지 불려가 재촉을 받았는데

그렇게 전체 몇 안 되는 애들 중에 나도 고개 숙인 채로 끼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보니 졸업식 날 다시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가 뭔가 못 낸 돈을 안내면

졸업장을 못 준다는 말에 아마도 축하객으로 왔던 친척인가가 내줬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선지 담임선생님이 졸업앨범도 내겐 주지 않아서

여태껏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다행으로 그 이후 어머니가 단칸 셋방을 얻어 함께 살면서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나마 유전자는 괜찮은 편이었는지 어머니께서 학교 한 번 찾아오시지 않았어도 

중, 고등학교 내내 반장을 하며 6년 동안 개근상장도 받는 등

어려움은 있었어도 학교생활에 충실한 아이로 자랐던 것 같다.


그래선지 내게 초등학교란 기억은 없었었고

또한 생각해 봤자 불행했던 기억만이 떠오르기에

아예 떠오르는 자체를 거부했었는지도 모르는....


그렇게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


먹종이처럼 잊혀진

아니 잊고 싶었던 과거


그러나 그곳에도 분명

어린 내가 있었기에